top of page

[토요기획]조선인 코 베어오면 ‘영수증’… 왜장들 “포상 근거”소중히 보관

잊혀진 전쟁 ‘정유재란’<9> 9화: 히데요시“코를 베어 와라”

1일 일본 교토(京都) 시 히가시야마(東山) 구의 옛 대불사 터(대불전). 정유재란의 주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신으로 받들어 모시는 도요쿠니 신사(豊國神社)가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100m쯤 걸어가다보니 대로변에 경주의 중형급 규모 고분과 비슷한 크기의 무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무덤 위에는 돌로 된 석탑(오륜탑)이 있는데 마치 무덤을 짓누르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무덤 앞 입간판에는 ‘이총(耳塚·귀무덤)’이라는 제목 아래 ‘조선 군민 남녀의 코나 귀를 베어 소금에 절여서 일본에 가지고 들어왔다’고 써있다. 세계 전쟁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왜군의 ‘코베기’ 만행을 증언하는 현장이다. “사람이 귀는 둘이 있고 코는 하나뿐이니 코를 베어 한 사람 죽인 것을 표시하여 바치고, 각기 코를 한 되씩 채운 뒤에야 생포하는 것을 허락한다.”(‘난중잡록’, ‘간양록’) 1597년 2월 조선 재침을 명령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해 6월 15일 내린 지시다. 임진왜란부터 이어지는 지루하고도 성과 없는 전쟁에 대한 반전(反戰) 분위기, 교토 일대를 재로 만든 대지진으로 인한 민심 이반 등으로 히데요시는 곤경에 몰려 있던 터였다. 이번 재침에서 확실한 성과를 보여줘야 정권의 안위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히데요시는 왜군들이 조선군과 적극적으로 싸우도록 내몰기 위해 극단적인 살육을 강요했다. 사실 왜병들은 2월 조선에 재출병한 이후 7월 칠천량 해전이 벌어지기 전까지 6개월간 이렇다할 전투 없이 조선 민간인들을 납치해 노동력을 착취하거나 노예로 파는 등 ‘사람 장사’에 열을 올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생략>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