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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획]이순신, 명량 승리하자마자 서해로… 병든몸 이끌고 수군재건

잊혀진 전쟁 ‘정유재란’<18> 18화: 이순신의 고단한 뱃길

1, 2일 이틀간 기자는 배를 타고 서남해의 바다를 누볐다. 420년 전 바로 이 무렵, 조선수군 재건을 위해 부단히 움직이던 이순신의 해상 길을 복원해 보는 취재였다. 이순신은 1597년 8월 18일(음력) 남해안의 장흥 회령포(회진항)에서 13척의 배를 수습한 뒤 그 한 달 후인 9월 16일 명량해전에서 기적적으로 승리했다. 이 기간은 이순신이 조선수군의 꺼져가던 마지막 불씨를 되살려내려 안간힘을 쓴 단계였다. 실제적인 조선수군 재건은 명량해전 이후부터다. 이순신은 해전을 승리로 이끈 이후 비로소 조선 수군 양성 및 왜군과 전면전을 치르기 위한 해상 진지 구축 작업을 벌일 수 있었다. 국내 첫 시도인 이순신 수군 뱃길 복원 탐사의 시작점은 명량해협 현장인 울돌목이었다. 신안군(군수 고길호) 행정선인 전남 213호(선장 김병직)는 평균 25노트(knot·1노트는 1시간당 1852m의 속력)로 파도를 가르며 출항했다. 선상에서 관찰하는 바닷길과 지형지물은 육지에서 볼 때와는 달랐다. 바닷물의 깊이, 밀물과 썰물의 조류, 바람의 방향 등이 배의 속도와 방향에 미치는 영향을 체감할 수 있었다. 420년 전 이순신은 이런 변수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해상 작전을 구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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