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산성 버리고 남원성” 明장수 하책에… ‘피의 살육’ 막지못해
잊혀진 전쟁 ‘정유재란’<7> 7화: 호남이 무너지다
1597년 7월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에게 대승을 거둔 왜군은 호남 내륙 유린을 본격화했다. 그해 8월 한가위 무렵, 진주와 구례를 분탕질한 일본 좌군(左軍)은 섬진강을 거슬러온 수군과 연합해 남원성으로 진격했다. 일본 우군(右軍)이 함양의 황석산성에서 백성들을 도륙하던 시기였다. 현재 전북 남원시 외곽에 있는 KTX 남원역이 아닌 구(舊) 남원역이 바로 420년 전 정유재란 당시 조선군과 왜군의 혈투가 벌어졌던 남원성 북문자리였다. 남원성은 둘레 2.5km, 높이 4m의 돌 성벽으로 둘러싸인 읍성이었다. 네모반듯한 형태의 평지성으로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중국식 읍성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남원성은 정유재란 때 왜군의 공격으로 성의 상당 부분이 훼손됐다. 그나마 남아 있던 성벽과 유적마저 수백 년 후 왜군의 후손들에 의해 또 파괴됐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은 그들에게 불리하거나 좋지 않은 기억을 남겨준 조선의 유물과 유적을 철저히 파괴하거나 은폐했다. 일제는 남원성 북쪽과 서쪽 성벽을 관통하는 철도인 전라선을 설치하면서 북쪽 성벽의 북문에 남원역을 건설했다. 조선군과 조선 백성들이 왜군에게 대항하다 처절하게 몰살당한 북문 자리에다 남원역을 세움으로써, 기차의 쇠바퀴와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의해 역사의 현장이 짓밟히도록 했다는 게 남원 향토사학계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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