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구차히 살아 무엇하리”… 황석산 피로 물들인 민초들의 순국
잊혀진 전쟁 ‘정유재란’<6> 6화: 조선이 감당한 마지막 육전(陸戰)
지난주 경남 함양의 황석산성을 취재하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다 못해 저려옴을 느꼈다. 황석산(1190m)의 능선을 따라 설치된 산성을 찾아 오르는 길에 만난 ‘피바위’ 때문이었다. 성의 남문지(南門址) 근처 널따란 암석지대를 설명하는 입간판은 이렇게 쓰여 있었다. ‘성이 함락되자 성안의 부녀자들은 왜적의 칼날에 죽느니 차라리 깨끗한 죽음을 택하겠다고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리고 수십 척의 높은 바위에서 몸을 던져 순절하고 말았다. 꽃다운 여인들이 줄줄이 벼랑으로 몸을 던졌으니 이 어찌 한스러운 비극이 아니겠는가. 그때의 많은 여인들이 흘린 피로 벼랑 아래의 바위가 붉게 물들었다.’ 입간판은 피바위에는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에도 피맺힌 한이 스며들어 그 혈흔(血痕)이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피바위 위로는 족히 수십 m쯤 되는 가파른 벼랑이 산성으로 이어졌다. 420년 전 이맘때 숱한 아녀자들까지 비장한 죽음으로 내몬 왜군의 수괴는 가토 기요마사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력제로 바치겠다며 조선 호랑이를 마구 사냥해 ‘호랑이 가토’로 불린 그는 조선인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학살자로 더 악명을 떨쳤다. 사명대사가 가토와의 대담에서 “조선 제일의 보배는 그대(가토)의 목”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조선의 원성을 샀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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