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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원숭이’가 욕심 낸 조선 자기, 패전국 日 부활시켜

[토요기획]잊혀진 전쟁 ‘정유재란’<22> 22화: 한중일에 휘몰아친 전쟁 후폭풍

이순신이 전사한 노량해전을 끝으로 정유재란은 발발 22개월여 만에 종결됐다. 노량해협에서 대패한 왜군은 부산본영으로 집결해 대마도를 거쳐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로써 임진년인 1592년 왜군의 침략으로 시작돼 7년간 조선 땅을 유린한 임진·정유 전쟁은 마무리됐다. 하지만 전쟁의 후유증은 컸다. 한·중·일 3국 모두에 거대한 후폭풍이 들이닥쳤다. 조선을 침략한 ‘섬나라 사루’(원숭이·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별명)는 결국 무모한 재롱을 부린 대가로 권력 기반마저 송두리째 잃고 말았다. 1598년 8월 히데요시는 죽기 전 원로그룹인 고다이로(五大老)에게 애원하다시피 유언을 남겼다. “거듭거듭 히데요리(히데요시의 아들)를 부탁합니다. 당신들 다섯 사람만 믿습니다.”(일본 모리가문 문서 3) 그러나 다섯 명의 야심가 중 가장 선두에 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히데요시 이후의 최고 권력자가 되고자 했다. 결국 히데요시 권력의 중추를 이루던 세력은 이에야스를 지지하는 동군(東軍)과 히데요리의 계승을 지지하는 서군(西軍)으로 분열됐다. 조선 침략의 선봉장 가토 기요마사는 히데요시의 혈족이면서도 동군에 가담했고, 호남지역 침공의 주역인 고니시 유키나가는 서군에 서서 대립했다. 순천 왜교성 전투에서 고니시와 함께 농성전을 벌였던 마쓰우라 시게노부, 아리마 하리노부 등 4명의 다이묘는 전우의 회유를 물리치고 동군 편에 섰다.(일본 ‘大村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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