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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에 확 바뀐 조선수군, 절이도 해전서 왜군에 본때

[토요기획]잊혀진 전쟁 ‘정유재란’<19> 19화: 절이도, 명량때보다 더 큰 성과

정유재란 발발 이듬해인 1598년 여름, 남해 바다는 폭염과 함께 전쟁 열기가 다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7월 18일 왜군 군선 100여 척이 전남 고흥의 녹도(鹿島·녹동)로 침범해 왔다. 10개월여 전 명량해전에서 참패한 이후 남해안 곳곳에 축조한 왜성들에 칩거하며 민간인 약탈과 산발적인 도발로 시간을 끌어오던 왜군이 다시 대규모 침공에 나선 것이다. 녹도는 이순신의 수군 통제영이 설치된 고금도(완도군)와는 불과 30km 남짓 떨어진 지점. 이순신을 견제하려는 왜군의 의도적인 행동임이 분명했다. 통제사 이순신과 명군 도독 진린은 즉시 휘하 전선을 이끌고 녹도에서 10여 km 떨어진 금당도(고흥군 금일면)로 나아갔다. 임진·정유 7년 전쟁 중 처음으로 이뤄진 조명(朝明) 연합수군 작전이었다. 척후선으로 보이는 왜선 2척이 금당도의 연합함대를 보더니 급히 도주했다. 이순신은 밤이 깊어지자 녹도만호 송여종에게 전선 8척을 주어 절이도(고흥군 금산면 거금도) 북서단 해역으로 나아가 매복하라고 지시한 후 금당도에서 밤을 새웠다. 절이도는 왜군에게 침범당한 녹도와 조명 연합수군이 머물고 있는 금당도 사이에 있는 섬이다.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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