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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교성을 점령하라” 韓中日 육군-수군 장군들의 대혈투

[토요기획]잊혀진 전쟁 ‘정유재란’<20> 20화: 동아시아 최대의 국제전

정유재란 발발 이듬해인 1598년 9월 하순, 16세기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수륙병진(水陸竝進) 전투가 호남 남부 연안에서 시작됐다. 조명(朝明) 연합 육군과 수군이 7년 전쟁(임진왜란+정유재란) 발발 이후 최초로 육지와 바다에서 펼친 협공 작전이자, 전쟁의 종지부를 찍기 위한 최후의 국제전이었다. 공격 대상은 전남 순천의 왜교성(순천왜성). 왜군의 호남 최대 거점지인 이 성은 가토 기요마사와 함께 조선침략 선봉을 다투던 고니시 유키나가의 근거지였다. 고니시는 1597년 9월 순천에 도착한 이후 근 1년간 왜교성에만 머물며 호남을 사실상 통치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전라도 연해 지역의 조선인들에게 민패를 발급하고 세금을 거두는 등 전라좌도의 왕 노릇을 했다. 왜교성에는 ‘왜병이 수만 명이라고 하지만 포로가 된 우리나라 사람이 반이 넘는다’(‘연려실기술’)고 할 정도로 조선인들도 많이 살고 있었다. 1만5000명의 왜군과 500척의 전선이 배치된 왜교성은 천혜의 요새였다. 성은 산줄기가 길게 바다로 뻗어 나와 마치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듯한 지형에 세워져 있었다. 주위 3면이 바다에 접해 있고, 나머지 1면만 육지로 이어졌다. 육로는 바닷물을 끌어들여 깊이 파놓은 해자에다 땅마저 질퍽질퍽해 외부에서 진입하기가 어려웠다. 돌로 된 내성(內城)의 성곽은 다섯 겹으로 쌓여 있었고, 그 바깥으로 한 겹의 외성(外城)이 호위하고 있으며, 또 외성 주변엔 목책이 이중삼중으로 설치돼 있었다.(‘선조실록’·‘예교진병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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