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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명 3부자 순절’ 밀알… 명량 승전 접한 민초들 속속 봉기

[토요기획]잊혀진 전쟁 ‘정유재란’<15> 15화: 다시 일어선 의병들 ②

임진왜란에 이어 정유재란 때도 의병들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인 줄 알면서도 선봉에 서서 싸웠다. 그들 대부분은 전투에 밝은 무인 출신이 아니었다. 칼을 들어본 적도 없는 전직 문관이거나 선비들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며 전란 극복의 주역을 자임했다. 1597년 9월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에게 처참하게 패한 일본 수군은 남해안의 웅천(진해 인근)으로 물러나 전력을 재정비한 뒤 포구 곳곳에 들이닥쳤다. 왜군은 3, 4척 혹은 8, 9척씩 짝을 지어 서해안의 영광까지 북상해 여러 섬을 수색했다. 왜병들은 주민들을 무차별 살육하고 노예사냥을 했다. 영광에서는 피란선 7척을 붙잡아 모조리 몰살시키기도 했다.(‘선조실록’) 이에 맞서 곳곳에서 의병들이 일어났다. 특히 이순신의 명량 승전 소식을 들은 호남 연안 백성들은 이순신의 수군 진영 근처로 속속 모여들었고, 수군 재건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정사정, 이몽린, 이극성 등 지역 유림들은 가내의 하인 수백 명과 장정들을 거느리고 이순신의 막하에 들어가 크게 활약했다.(‘이충무공전서 동의록’·‘호남절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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