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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옥선과 안택선

  • 임진정유역사재단
  • 2017년 12월 19일
  • 2분 분량

우리나라의 판옥선은 당시 유래를 찾을수 없는 독창적인 배입니다.

보통 군선에는 전투를 담당하는 병사들.. 즉, 포수들과 사수들 그리고 상대 배가 가까이 오면 백병전을 하는 갈고리병과 살수들로 나눌수 있습니다.

그리고 직접 전투를 하지 않고 노를 저어 배를 움직이거나 적의 동태를 파악해서 키를 잡고 방향을 설정하는 비전투원들이 있습니다.

보통의 타국 군선들은 비전투원과 전투원이 거의 같은 위치에서 일해서 배 안에서 서로 움직이는 동선도 자주 겹치고, 전투 와중에 배를 움직여야 할 비전투원들이 많이 죽어서 이기더라도 배의 움직임이 현격히 둔화되는 너무나 소모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이 점을 극복한것이 판옥선입니다.

먼저 판옥선은 2층 구조입니다.

당시 배들은 단지 배 가장자리에 노를 배치해서 끄는 형식이었지만,판옥선은 2층으로 만들어서 가장 아래쪽을 방으로 만들고 노를 젓고 배를 움직이는 비전투원들이 있는 자리로 했기 때문에 전투에서의 비전투원의 희생을 최소화 했습니다. 그 윗층에 전투원들을 배치하고 지휘관이 지휘하는 누각을 세워서 그 누각이 있다고 해서 판옥선이란 이름이 붙은겁니다.

다른 분이 말씀하셨듯이 크기에 따라 대맹선, 중맹선, 소맹선으로 나눌수 있었고 대맹선에는 전체 정원이 비전투원과 전투원을 합해서 최고 300명이상까지도 탈수 있었다고 하나, 임진왜란 당시는 병력이 부족해서 120명 정도가 탑승했었습니다. 중맹선은 80명 내외, 소맹선은 30명 내외입니다. 그리고 판옥선의 가장 큰 장점은 기동력과 견고함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전술은 배의 크기나 병력의 규모에서 왜군들이 앞서기 때문에 큰 바다에서는 거의 전투를 안하고 가장 작은 소맹선이나 중맹선을 몇 척 이용해서 좁고 물살이 빠른 해협으로 유인한 후 막강한 대포의 화력을 앞세워서 포위 작전으로 이기는 겁니다. 이것이 이순신 전술의 요체입니다. 돛대가 두개라 스피드가 빨랐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가 단순한 직선거리의 스피드 말고도 판옥선은 노의 위치가 정연했고 무엇보다도 방향을 잡는 키가 두개여서 신속한 방향전환이 가능했습니다.

일본의 전선인 안택선은 배가 단층이라 한층 더 높은곳에서 내려다 보며 싸우는 우리 판옥선보다 먼저 위치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고 판옥선은 판자와 판자의 연결을 나무못으로 해서 나무못이 물로 인해 팽창되어 결합력을 크게 한 반면에 안택선은 쇠못을 이용했기 때문에 녹이 슬어서 견고함이 판옥선을 따라가지 못했지요.

그래서 판옥선과 돌파선인 거북선에 무참히 패하는 겁니다. 그리고 배에 장착하는 함포도 원래가 조선의 것이 성능이 뛰어난데다가 판옥선은 배의 옆에 장착해서 명중률이 높았지만, 안택선은 배의 들보(배와 지붕을 지탱하는 기둥) 에 매달아서 사용했기에 명중률이 지극히 낮았죠.

또한 배를건조하는 주재료인 목재가 왜선인 안택선은 녹나무와 삼나무인데 이나무들은 가벼워서 건조가 용이하고 건조했을때의 기동성이 뛰어나고 민첩한반면 아열대수목이라 나무의 강도가 아주떨어졌다 반면 조선의 주력함선 판옥선은 다소무겁고 기름기가 많은 육송이었다 다소무겁고 재질이 치밀하여 건조상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실전에서의 차이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아다케 후네(安宅船, 안택선)은 임진왜란 당시의 일본 군함 중에서 가장 큰 배이다. 아다케란 이름이 무슨 뜻인지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도 정설이 없는 실정이다. 한자의 의미 그대로 매우 튼튼하고 안전하다는 뜻이라고 해석하는 주장도 있고, 혹은 일본 지명 안택포(安宅浦)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일본 전통 배의 권위자인 石井謙治에 의하면, 아다케란 '적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구 날뛰는 배'라는 뜻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의 일본은 한국과 달리 중앙집권적 군대를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역별로 군편제나 무기의 차이가 심한 편이다. 아다케도 예외는 아니어서, 각 배마다 차이가 너무 심해 어떤 통일적인 특성을 논하기가 매우 어렵다. 아래 아다케의 모형은 일본의 신송원(新松院)에 소장된 것인데, 일본 학계에서는 아다케에 대한 가장 권위있는 자료로 인정하고 있다. 이 모형은 임진왜란 당시 고바야카와 히데야키(小早川秀秋)를 섬긴 가신이 만든 모형으로, 정확한 제작시기는 알 수 없으나 1714년에 신송원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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