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 추모와 전적지 복원 사업을 위한 “임진정유 역사재단” 설립 발기문
420년 전, 금수강산은 피로 붉게 물들었다. 조선의 남부 4도를 삼키려는 왜적의 공세는 잔인무도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재침공 명령으로 명나라와 왜국 간 강화 협상은 깨졌다. 왜적의 말발굽에 짓밟힌 백성들은 귀를 잘리고 코를 베였다. 가토 기요마사가 이끈 왜적의 파상공세에 조명 연합군은 힘을 합쳐 맞섰다.
정유재란 때 피에 굶주린 왜적은 무시무시한 공포 그 자체였다. “애비야” 하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그쳤다. 조선 민초들은 죽임을 당하고 노예로 끌려갔다. 전란 희생자는 이들뿐 아니었다. 조선의 관·의병은 물론이고 명나라와 왜국 무명용사들도 이국의 땅과 바다에서 속절없이 스러졌다. 피로 얼룩진 정유재란 7주갑이다.
당시로는 드문 국제 전쟁이었다. 그러나 정유재란은 여전히 `잊혀진 역사’로 묻혀있다. 가르치는 사람도 없고, 그렇다보니 배우는 이도 없다. 몇몇 소수 역사학자의 관심에 머무르고 있다. 동아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이 최근 조명하고 있지만 이렇게 버려둘 일이 아니다. 세월이 더 흐르기 전 소홀함을 바로 잡아야 한다.
지금 동북아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화약고나 다름없다. 북의 핵미사일 도발과 사드배치 맞대응 카드로 긴장의 파고가 위험수위를 넘었다. 남(南)은 변방에서 10위권 경제강국으로 도약했다. 그러나 핵 불장난을 일삼는 북의 무모한 도발로 우리가 대대손손 살아가야 할 터전 한반도의 평화와 생존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남중국해와 인근 도서의 미·일-중 간 힘겨루기는 불에 기름을 붓는다. 평화 공존을 깨는 전쟁 방아쇠를 누구도 당겨선 안 된다. 동아시아 3국이 충돌한 정유재란을 새롭게 조명해야 할 이유는 자명하다. 420년 전과 같은 전쟁의 참화를 막고 평화의 교훈을 되새기려는 뜻에서다. 그 초석을 놓는 작업에 착수하려는 것이다.
임란 때 문인(文人)인 선비들이 의병창의에 앞장서 병참기지 호남을 지켜냈다. 해상에선 덕암 이순신이 왜적을 연전 연파했다. 덕암은 명량대첩에 이어 피어린 노량(관음포)해전에서 전사함으로써 적을 꺾고 7년 전쟁의 대미를 그었다. 순천 앞 광양만 서쪽에서 시작한 해상 전투가 꼬리를 물어 동쪽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들의 희생은 청사에 길이 남아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화신으로 기려야 한다. 마찬가지로 7년 전쟁에서 숨져간 조선 백성과 동아시아 3국 무명병사의 원혼도 달래야 한다. 이들 또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무고하게 생명을 빼앗겼다. 이역 하늘을 맴도는 혼백들을 달래는 씻김굿이라도 해야 한다. 더는 늦출 수 없다.
60년이 다시 흐르면 정유재란 8주갑이다. 그때까지 해원과 상생의 작업을 미뤄둘 작정인가. 그럴 순 없다. 우리는 `정유재란 추모 및 전적지 복원을 위한 “임진정유 역사재단”(가칭)’을 발족해 이들의 희생을 추모하며 한중일 3국의 평화와 공동변영을 위한 교육 및 추모사업을 해나갈 것이다. 뜻이 있는 사람들의 참여와 지원을 바라 마지 않는다.
시간이 더 흐르면 기록과 자료는 사라질 것이다. 소중한 교훈을 되새기려는 사람들도 줄어들 것이다. 정유재란 전적지 중에는 개발의 삽질로 이미 훼손된 곳이 많다. 대표 사례가 순천 왜성 앞바다 `장도’다. 조선 수군이 왜적에게서 탈환한 기지였다. 이 섬의 절반이 깎여나갔다. 그나마 매립으로 바다의 섬이 아니라 육지의 섬으로 남아, 원상회복이 힘든 상황이다.
순천을 중심으로 국제전이 벌어졌던 광양만 일대 광역·기초단체들이 이 사업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마침 고흥~거제 간 400km 바닷길이 열릴 예정이다. 이곳을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역사 교육 문화 관광중심지로 만들 것을 제안한다. 이곳으로 중국과 일본 관광객과 양국 청소년까지 불러 평화교육의 메카로 조성하자.
정유재란 재조명과 전적지 복원은 우리가 이뤄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다.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하는 민족에게는 고난과 불행이 다시 닥칠 수 밖에 없다. 임진·정유 7년 전쟁은 이순신과 무명병사, 의병 민초들이 일궈낸 빛나는 승전의 역사다. 결코 짓밟히기만 한 역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후손들에게 낱낱이 가르쳐야 한다.
한중일 3국 무명병사의 원혼이 아직도 전적지 허공을 맴돌고 있다. 그 피움을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우리가 먼저 해원과 상생의 첫 삽을 뜨는 일에 힘차게 나서자. 평화와 변영의 동북아 시대를 여는 첫걸음에 우리가 함께 앞장서자.